제주도 한경면 용수리 해안은 성 김대건 신부가 중국 상해를 출발하여 서해 바닷길로 귀국하다가 표착한 곳이다.
성 김대건 신부는 1845년 8월 17일 중국 상해 김가항 성당에서 24세때 한국인 최초로 사제품을 받았다.
그는 같은 해 8월 31일 페레올 주교와 다블뤼 신부 등 일행 13명과 함께 '라파엘호'라는 무동력 범선을 타고 상해를 출발하여 귀국하던 중 큰 폭풍우를 만나 표류하다가 상해 출발 29일 만인 9월 28일 이곳 용수리 해안에 표착하였다.
용수포구 옆에 위치한 용수성당과 김대건 신부 표착 기념관
성당 종탑은 등대를 연상케 한다.
용수성당은 김대건 신부가 신품을 받은 상해 김가항 성당을 참고로 디자인 되었다고한다.
미사: 매주일 오후 7시 30분
선당안에는 걸어서 순례하는 순례자들이 도착해서 기도하고 있었다.
스테인드글라스에는 김대건신부님의 여정과 활동이 그려져있다.
성김대건 신부 제주표착 기념관 - 표착한 배 라파엘호를 형상화했다.
기념관의 1층 평면도
기념관에는 한국의 순교자들의 박해받을때 사용된 도구들이 전시되어있다.
제주교구는 한국 개화기의 문화적 종교적 선구자인 김대건 신부의 선교 열정과 순교 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1999년 9월 19일 용수리 포구를 성지로 선포하였다.
여기에 김대건 신부 제주 표착 기념 성당과 기념관을 건립하였고, 전문가의 고증을 거쳐 '라파엘호'를 복원하여 전시하고 있다.
라파엘호의 항해도 : 제주표착기념관 공식사이트 사진.
주요 항해 일지를 보면, 배 한 척을 은 146냥(현재시가 약 1억2천만원)에 구입하여 1845년 4월 30일 김대건부제, 현석문(가롤로), 이재의(토마스), 최형(베드로), 임치화, 노언익, 임성룡(베드로), 김인원, 선목(배를 수리, 건조하는 목수), 물 길잡이(항해사) 등 모두 12명이 승선하여 마포나루를 출발하여 중국 상해로 가던 중 강한 폭풍우에 시달렸고, 해적선을 만나 위협도 받았으며, 어렵게 산동 배의 도움을 얻어 양자강 입구 오송항에 입항하여 상해에 있는 페레올 주교와 연락이 닿아 상해 항에 입항, 8월17일 금가항 성당에서 사제서품을 받을 수가 있었다.
8월 24일 횡당 신학교에서 첫 미사를 드린 김대건 신부 일행은 8월 31일 여행자의 주보인 라파엘 대천사의 이름을 따서 배 이름을『라파엘호』라 명명하고 페레올주교, 다블뤼신부, 김대건신부, 교우 및 선원 등 14명이 승선하여 상해 항을 출항하여 귀국 항해 중에 풍파로 인하여 숭명도 연안에 피항 하였다가, 중국 교우의 큰 선박에 예인해 오던 중 폭풍우로 키와 돛이 파손되고 큰 선박에 연결된 예인 밧줄이 끊어져 해류와 바람에 의해서 표류하다가, 9월 28일 상해 출항 29일만에 제주도 용수리 포구에 도착하였다.
김대건 신부 일행은 표착한 후 조선에서의 감격어린 첫 미사를 용수리 해안에서 봉헌하고 배를 수리한 후 이곳을 떠나 전라북도 금강 하류 나바위로 상륙하였다.
고증에 의해 라파엘호 복원이 진행되고있다.
배에 가티 승선했던 페레올 주교가 프랑스 파리의 동료 신부님에게 보낸 쓴 편지글에는 라파엘호의 외형이 다음과 같이 그려져있다.
"그 배는 길이가 25자(7.5m), 너비가 9자(2.7m), 깊이가 7자(2.1m)입니다. 이 배를 건조하는 데는 쇠못 한 개도 들지 않았고, 널판은 나무못으로 이어져있습니다. …엄청나게 높은 돛대 두 개에는 서로 잘 꿰매지지 않은 거친 광목으로 된 돛 두 폭이 달려있습니다. 뱃머리는 선창까지 열려있는데, 그것이 3분의 1을 차지합니다. …갑판의 일부분은 자리로 되어있고, 일부분은 아무런 고정기구도 없이 그저 잇대어 죽 깔아놓은 나무판자로 되어있습니다. 거기다가 배 안으로 들어가는 구멍 셋이 있습니다."
이 편지 내용을 토대로 제주교구는 1999년 성산읍 오조간이조선소에 라파엘호 복원을 의뢰했다.
삼나무를 재료로 못 하나 박지 않고 3개월여의 노력 끝에 라파엘호가 완성, 1999년 7월 31일 진수식을 가졌다.
이 배는 장거리 항해를 목적으로 지은 배이기 때문에 갑판이 있고 선실에는 밥을 지어 먹을 수 있는 장치가 되어 있다.
복원된 라파엘호
1999년 9월 8일부터 19일까지 중국 상해 항에서 이곳 용수리 포구까지 복워한 라파엘호와 함께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고난의 길을 체험하려 하였으나, 실행 중 높은 파도 때문에 해상 순례를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150여 년 전 김대건 신부님 일행이 상해에서 제주로 항해한 여정은 하느님의 섭리였음을 느끼게 되었다고...
기념관 옥상에서 본 앞바다 풍경 - 와섬과 차귀섬.
이렇게 작은 배로 조선과 상해를 오갔다는게 이해가 되지 않은다.
장기간 14명이 먹고 지낼 물과 식량은 제대로 준비가 되었던 건지..
당시 조선해안은 외국선박이 자주 나타나 해안경비가 매우 심해서, 정상적인 항로인 백령도부근 항로를 택했다면 육지에 도착하기도 전에 붙잡혔을지도 모르니, 이곳 제주도를 거쳐가게 된것이 오히려 주님의 섭리인것 같은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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