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비엔나 음악가 묘지

조태오 2014. 12. 1. 14:55

우리가 탄 버스는 헝가리에서 오스트리아로 이동했다.

오스트리아 국경에서 수도 비엔나 까지는 약 50km, 수도가 동쪽 국경 가까이 위치해있는 셈이다.

비엔나는 오스트리아의 수도이면서 음악의 도시라고 한다. 옛날부터 비엔나 시민들이 음악을 좋아하고, 사회적으로 음악가들의 활동을 많이 지원했으므로, 슈베르트, 슈트라우스 등 오스트리아 국내음악가가 많이 배출되었고,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 리스트, 쥬페, 브람스 등 외국 음악가들도 모여들었다.

 

비엔나의 음악가 묘지의 정식 이름은 중앙묘지(Zentralfriedhof, Central Cemetery)이다. 여러군데 흩어져있던 음악가 무덤들을 이곳에 모아 음악가 묘역으로 조성하여서 사람들이 많이 찾다보니 유명해져서 음악가 묘지로 알려지고있다.

 

음악가 묘지 정문




회랑같이 보이는 건물이 묘지의 시작이다.


묘소마다 특색있게 가꾸어서 보기가 좋다.


묘소마다 조각품들을 설치하여 마치 조각전시장 같다.


이 묘소의 주인은 미녀들과 함께 영원히... ㅎ

여기가 음악가 묘역 32A지구


가운데 있는 모차르트 기념비를 중심으로 왼쪽에 있는 베토벤의 묘와 오른쪽에 있는 슈베르트의 묘.


모짜르트의 묘가 아닌 모짜르트기념비.


베토벤의 묘

 독일 본에서 태어난 베토벤(Beethoben)은 성악가인 아버지로부터 엄한 음악교육을 받았으며 후에 하이든으로부터 사사를 받았다. 그는 비범한 음악적 재능을 인정받아 비엔나로 유학을 오게 되었다.

 20세 후반부터 귓병에 시달려 온 그는 청력을 서서히 잃기시작했다. 게다가 베토벤은 폐병, 관절염, 황달, 안질까지 걸렸다.

 1814년경부터는 완전히 귀가 먹어서 글로만 대화가 가능했으며 1824년에 교향곡 제 9번의 초연을 지휘한 그는 청중의 열렬한 환호도 못 들은 채 서있었는데 독창자의 인도로 돌아서서야 비로서 열광하는 청중을 보고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다는..


슈베르트의 묘

슈베르트는 1797년 비엔나에서 국민학교 교장의 아들로 태어났고, 음악적 재능이 있는 아버지로부터 기본적 교육을 받았다.

  6살 때부터 아버지와 형으로부터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고, 7살부터 비올라를 맡아 형들과 함께 현악4중주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성악에도 재능을 인정받아 11살 때 비엔나 황실부속신학교(Stadtkonvikt)에 입학하여 합창단원으로 뽑히기도 했다.

꿈에도 존경하던 베토벤을 그가 죽기 1주일 전에 만나게 된 슈베르트는 자신이 작곡한 곡을 몇 곡 보여주었는데 베토벤이 극찬하였으며 일찍 만나지 못했음을 몹시 아쉬워했다고 한다.

그 후 약 1년반만에 슈베르트도 알 수 없는 병에 걸려 32년이라는 짧은 생을 마감했다.

슈베르트는 600여곡의 가곡을 작곡하여 ‘가곡의 왕’으로 알려져 있다. 그 외에도 8곡의 교향곡과 소나타, 오페라 등을 작곡했다.


 요한스트라우스묘와 브람스의 묘가 나란히 있다.


요한 슈트라우스 2(10/25/1825 6/3/1899)와 그의 세 번째 부인 Adele의 묘.

작곡가 요한 슈트라우스 1세의 아들인 그는 400여곡의 왈츠를 작곡하여 왈츠의 왕으로 알려져 있다. 일반적으로 ‘요한 슈트라우스’하면 이 아들을 칭한다.

 비엔나 근교에서 태어난 슈트라우스는 그가 은행가가 되기를 원하는 아버지의 극심한 반대로 음악공부를 하지 못했다.

 아버지 몰래 바이올린과 음악이론을 공부한 슈트라우스는 부모가 이혼한 후에야 비로소 공개적으로 음악활동을 할 수 있었다.

첫 부인과 사별한 후 두 번째 결혼은 성격차이로 곧 파탄에 이르렀고, 그의 음악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한 세 번째 부인과 함께 말년을 보내게 된다.

왈츠로 ‘푸른 다뉴브 강’과 ‘비엔나 숲 속의 이야기’, 오페레타로 ‘박쥐’ 등을 그의 대표작이다.


브람스의 묘

브람스(18331897)는 독일 함부르크에서 이름없는 악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소년시절부터 댄스 홀에서 피아노를 치며 어려운 가사를 도왔으며, 한편으로  음악이론을 열심히 배웠다.

브람스는 20세에 당시 유명한 바이올린 주자 레미니(Remenyi)의 반주자로 발탁되었다.

30세가 되어 비엔나를 방문한 브람스는 이 곳에 정착하여 인생의 후반부를 보냈다.

그의 작품은 성악곡과 기악곡이 대부분이고, 교향곡은 4편이 있다.


잔잔한 음악이 흐르는 것처럼 조용하고 평화스럽게 보이는 음악가 묘역.


비엔나 중앙묘지는 면적이 2.4평방km이고, 묘소가 약 33만기에 달한다고

비엔나 중앙묘지(Wiener Zentraltriedhof)가 처음부터 유명했던 것은 아니다. 원래 음악가들의 묘는 오스트리아 각 지역에 흩어져 있었는데, 칼 뤼거(Kal Leuger) 비엔나 시장의 아이디어로 이 곳에 모두 모이게 되었다음악가 뿐만 아니라 학자나 정치인 등 유명한 사람들의 묘가 모두 이곳에 있는데,  일반인들도 이 곳에 묻히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아서 중앙묘지가 지금처럼 커졌다.


중앙묘지 중심에는 1910년에 완공된 St. Charles Borromeo Church가 있는데,

중앙묘지를 추진했을 당시의  시장이었던 칼 뤼거를 기념하기 위해  Dr. Kal Leuger Memorial Church 라고도 부른다.

공동묘지가 관광명소가 되다니...

칼 뤼커시장의 아이디어로 또 하나의 비엔나 명소가 생겨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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