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인 빅토리호(SS Lane Victory)는 산페드로 항에서 박물관으로 일반에 공개되고있다.
2차대전을 비롯해 많은 역사를 간직한 레인 빅토리호는 미국 역사유물(National Historic Landmark)로 지정되어있다.
샌페드로 부두 Berth 49에 정박한 레인 빅토리호
레인 빅토리호는 1945년6월 롱비치 터미널섬에 위치했던 Cal Ship조선소에서 건조되었다.
1945년6월27일 첫출항후 2차대전 기간 태평양에서 임무를 수행하였고, 1947년 퇴역했다.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1950년 재취역했다가 1953년 다시 퇴역했다.
1966년부터 베트남전에 다시 취역했고 1970년 아주 퇴역했다.
1만톤급 화물선이 이 정도라는 걸 가늠해보았다.
10만톤, 20만톤은 엄청난 규모일것 같은..
2차대전 4년간, 1600만명의 미군이 해외 전장에 나갔는데, 1병사당 1년에 7톤의 보급이 필요했다. 이들 대부분의 보급품과 탱크 트럭 칲차 등의 군수품을 Merchant Marine이 수송했다.
Merchant Marine은 민간운송기구이지만 미국정부와 계약해서 평시에는 정부운송을 담당하고, 전시에는 전쟁물자를 운송했다.
박물관 입구 - 입구에서 계단을 내려가면 화물칸을 개조해 만든 박물관이 있어 여러가지 역사자료를 볼수있다.
빅토리 클라스를 건조하고있는 조선소..
제일 먼저 진수한 배가 의장 작업을 하기위해 안벽으로 향하고있다.
선박 앞부분을 블럭으로 만들어 옮기는 과정
선박건조에 종사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여성이다. 남자들은 전선으로 나갔기때문이다.
여성 용접공 - 한달간의 훈련으로 용접공이 된다.
The Liberty Ship과 The Victory Ship 비교
Liberty Class 선박은 2차대전 초반에 시급한 해상운송수요를 대응해 빠르게 다량 건조되어 전쟁물자 수송에 크게 기여하였다. 4년간 2710척이라는 엄청난 수량을 건조하다보니 건조상의 결함으로 운송도중 침몰하거나 조선소에서 정비하는 일이 많았고 속도가 느려 운용상 애로가 많았다. 배 길이 134m, 총 배수량 14474톤, 엔진 2500마력, 속도 11노트, 첫배 완성 1941년9월27일.
Victory Class 선박은 Liberty Ship의 문제점을 보완하기위해 1944년부터 534척이 건조되었다.
크기는 조금 큰 정도이나 개량된 엔진을 장착하여 속도가 더 빠르고 화물을 싣고 내리는 장치도 개선되어 수송능률을 향상시켰다.
빅토리 클라스 선박의 주요 제원을 보면, 배 길이138m, 총 적재량 10600톤, 총 배수량15200톤,
엔진 6000마력, 속도16.3노트. 첫배 운항 1944년2월28일.
방어장비로 5인치 대공포 1문, 3인치 대공포 1문, 20mm기관총 8기. 선원62명, 해군경비병18명.
2차대전에 참여한 빅토리 클라스 선박 531척중 3척이 일본군 가미가제 폭격으로 침몰했다.
한국전에 36척이 참여했고, 베트남전에 100척이 투입되었다.
빅토리 클라스 선박들은 전후에 민간기업에 매각되기도 했고, 현재는 3척이 박물관으로 운용되고있다.
빅토리호가 전시에 운반하는 물자는 무기류의 비중이 높았다.
선박 운항중 방향을 정확히 잡는데 쓰는 자이로스코프
선박 추진 엔진의 상부
야전 통신기 - 손잡이를 돌리면 전기가 발생되어 야외에서도 계속 사용할수있다.
이 화물선에는 이렇게 차량들도 많이 수송했다.
이 배의 선원들은 민간인이긴 하지만 Merchant Marine조직으로, 해군과 비슷한 계급제도가 있고, 계급장도 해군과 비슷하다.
선원 숙소
5인치 대공포 - 배의 뒷쪽에 설치되어있다.
빅토리 선박의 모든 무기운용은 해군소속 경비병들이 담당한다.
20mm기관총 - 8곳에 설치되었다.
기뢰 - 이 배에서 설치하는건 아니고, 이를 피해 다녀야한다.
어뢰 - 역시 기피 대상이다.
레인 빅토리호는 2차대전이 끝나고 퇴역했다가, 한국전이 일어나자 1950년 다시 취역했다.
1950년12월15일부터 흥남에서 193척의 선박이 유엔군 철수작전에 투입되었다.
레인 빅토리호도 철수작전에 투입되어 군인 3800명과 차량1100대를 철수시켰고,
마지막 항차에서 피난민7009명을 싣고 부산으로 오는 도중에 1명이 여아를 해산하여 2010명을 부산에 안전하게 하선시켰다.
마지막 남은 상선 메러디스 빅토리호에는 피난민 1만4천명을 실었는데, 부산으로 오는 도중 5명이 해산하였다. 부산항 부두에 피난민이 너무 많아 입항하지 못하고 거제도에 하선시켰다.
12월24일까지 철수작전 완료결과 193척의 선박이 군인 105000명, 피난민 98100명, 차량 17500대, 각종물자 35만톤 등을 안전하게 철수시켰다.
레인 빅토리호의 피난민 승선 숫자가 7000명, 7009명, 7010명으로 된 자료들이 있는데, 여기엔 7009명으로 되어있다.
함흥철수때 피난민 철수에 대한 감사의 표시들이 여럿 있었다.
평시에도 정부물품의 운송에 참여했다.
베트남전에도 운송작업을 수행했다.
퇴역후에는 영화촬영에도 이용되었다. - Life of Pi 영화장면
해상경비훈련이나 소방훈련 등에도 이용된다.
부두에 있는 선박완충장치
바로 건너편에 있는 LA항 컨테이너 부두
LA항 부두시설
LA항에 입항중인 컨테이너선
1만톤급 화물선 레인 빅토리호는 미국과 한국의 역사 한 페이지를 증명하며 굳건하게 서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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