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버설 스튜디오 입구 Lankershim Blvd 건너편에 Campo de Cahuenga 기념관이 자리잡고 있다.
캘리포니아에서의 멕시코-미국 전쟁 종식하는 조약에 서명한 장소이다.
기념관의의 팜프렛의 내용을 요약하면 :
미국 미시시피강 서쪽에서 가장 중요한 역사적인 랜드마크가 이곳 샌페르난도밸리(San Fernando Valley)에 있다. 여기 있는 캄포 데 카후엥가 (Campo de Cahuenga) 에서, 미국이 캘리포니아를 정복하는 최종 활동이 극적으로 실현되었다. 이로써 미국은 대서양에서 시작하여 태평양까지 진출하는 ‘영토형성 작업’을 완성하였던 것이다.
멕시코 전쟁의 발발 - 1845년에 텍시스가 미국에 병합되므로 인해서, 미국과 멕시코 사이에는 텍사스-멕시코 국경지대에서 적대적인 상황이 일어났다. 당시 미국 대통령 제임스 폴크(James K. Polk 11대, 1845-1849)는 평화로운 해결을 위하여 수백만달러를 제공하고 서남부지역을 얻기를 원했다.
협상은 실패로 끝났고, 영국이 캘리포니아를 차지할 것이라는 두려움을 느낀 폴크대통령은 그 지역의 과학 탐사를 위해 프리몬트(John C .Fremont)를 팀장으로 한 과학탐사팀을 파견하였다.
폴크 대통령은 비밀리에 프리몬트에게, 캘리포니아에서 전쟁이 선포되거나, 영국이 나타나서 캘리포니아를 합병할 경우, 현지 멕시코정부에 대한 미국인의 반란이 일어나면 반란측을 도우라고 지시했다.
이 즈음 캘리포니아에는 약 7천명정도의 멕시코인들이 살고있었고, 소수의 미국인들이 사업차 살고있는데, 멕시코정부의 간섭때문에 이 지역이 미국에 속했으면 좋겠다고 미국정부에 건의하였다.
1846년 텍사스와 멕시코 국경에서의 충돌을 기화로 폴크대통령은 의회 동의를 얻어, 5월13일 멕시코에 대해 전쟁을 선포하였다.
한편 미국해군은 태평양상에서 캘리포니아쪽으로 항진하였다.
프리몬트는 400명의 남자로 군을 조직하여 부대를 만들었고, Jesus Pico를 체포하였고, 동부에서 지원병력도 와서 합류하여 전쟁은 미국에 유리하게 전개되었다. 12월12일에 프리몬트는 캘리포니아지역 멕시코군 최고사령관 피코 대장(General Andres Pico)을 만났고, 피코 대장은 휴전을 고려하고 있었다.
다음해인 1847년1월13일 프리몬트 부대가 진을 치고있는 San Fernando Mission에서 2마일 떨어진 Cahuenga목장의 집(Mission Adobe)에서, 미국측 Lt. Colonel Fremont와 멕시코측 General Andres Pico는 카후엔가조약 (Treaty of Cahuenga)에 서명하여 캘리포니아에서의 멕시코-미국 전쟁을 종식 시켰다.
기념관 내부는 전쟁을 전후로 한 시대의 유물들을 전시해 놓았으나 많지는 않았다.
조약 서명 - 왼쪽 흰 제복 군인이 멕시코측 Pico 대표, 오른쪽 푸른 제복 군인이 미국측 Fremont 대표.
미국 대표로 서명한 John C. Fremont
프리몬트는 전쟁 종식 직후 캘리포니아 군 지사로 임명되었으나, 얼마후 General Kearney에 의해 불복종죄로 직위해임 되었으며, Washington D.C로 보내어져 재판받고 유죄가 되었으나 폴크대통령의 의해 사면되었다.
그는 군을 떠나 캘리포니아주 출신 연방상원의원이 되었으며, 1854년에는 공화당 최초의 대통령후보가 되기도 하였다. 그는 노예제도를 반대하여 ‘흑인 공화당원’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남북전쟁때에는 대장으로 복무하였다.
멕시코 대표로 서명한 General Andres Pico
피코는 종전후 캘리포니아에 살면서, 지역에서 영웅이 되어 주 하원의원, 주 상원의원, 대통령 선거인(Electoral College Elector)이 되기도 하였다. 그는 이 지역의 스페인신사 (Don of San Fernando Valley)였다.
종 손잡이가 새로 조각되어있는게 흥미롭다. 종을 흔들면 새소리가 울려 나올듯.
종 손잡이에 야생마 길들이는 모습, 소를 굴레로 잡으려는 목동이 조각되어있다.
기타 생활 용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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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로서는 통탄할 일이다! 그러나 오늘날 이 지역에는 멕시코사람들이 백인만 큼 많이 살고있고, 아마도 수십년 후에는 멕시코사람들이 훨씬 많아져 자연스레 영토를 되찾는 현상이 될것 같다.
전쟁당시의 카후엔가 목장 집.
당시에 집짓는 방법 - 흙을 잘 이겨 잘라서 햇볕에 말려 벽돌을 만든다.
지붕에 덮을 기와를 굽고있다.
도로 개설과 지하철 공사 등으로 원래의 위치에서 조금 이동한 곳에 기념관이 지어졌고, 원래의 건물은 기초만 볼수있다.
기념관 앞 마당엔 왕의 길 을 따라 세웠던 종 El Camino Real Bell이 세워져있다.
찾았던 시각이 오후 두시쯤인데, 해시계가 두시를 가르키고있다.
기념관 처마밑에서 보이는 NBC Universal 빌딩.
이 곳의 조약으로 인해 여기가 미국이 되었고, 결국 저 빌딩도 그 영향을 받아 세워졌겠지..
이 곳은 캘리포나아주 역사랜드마크15호로 지정되었고, 로스엔젤레스시 문화역사유적29호로 지정되었다.
조약서명 41년후인 1888년에는 프리몬트 장군이 현지를 방문하여 역사의 현장을 돌아보았다.
카후엔가(Cahuenga)는 원주민 통바족 말로 언덕의 장소(place of the hill)라는 뜻이다.
기념관의 일반 개관은 토요일 11시부터 3시까지. 주차비나 입장료는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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