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용기있는 할머니들

조태오 2012. 8. 2. 13:07

글렌데일 중앙도서관에서 눈길끄는 사진 전시회가 있었다.

'할머니들의 외침' 의 제목으로 2차대전때 일본군에 끌려가 고생했던 한국과 아시아 여러나라의 할머니들의 용기있는 증언을 보여주는 전시회였다.

미국의회에서 일본의 만행을 규정하는 결의안을 통과(2007.7.30)시킨지 5주년을 기념해서 열리는 전시회이다.

 

글렌데일 중앙 도서관

 

글렌데일 중앙도서관 내부

 

전시회가 열리고있는 중앙홀

 

김순덕 할머니는 소녀시절 이렇게 곱게 자랐었는데...

 

2차대전이 계속되던 어느날, 당시 15세였던 소녀에게 비극이 시작되었다.

어느날 일본군에게 끌려가는 비운이 닥쳤다.

 

 

그후 배를 태워 멀리 보내졌습니다.

 

"배 안에는 군인들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아무도 우리가 어디로 가는지 기르쳐주지 않았습니다.

가도 가도 끝없는 바다."

1937년 당시 16세였던 김순덕소녀는 중국 상하이 지역 일본군 위안소로 보내졌다.

 

배를 따는 일본군.

"우리는 일본군에게 요구충족의 대상일뿐이었습니다. 손만 뻗으면 따먹을수 있는 과일처럼..."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가 되었던 세월

 

"전쟁이 끝났습니다. 그러나 내 삶은, 젊음도 꿈도 피워보지 못한채 그렇게 아파해야만 했습니다.

과거의 무서웠던 역사를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채 속으로..속으로.. 그렇게 통곡해야만 했습니다."

 

 

 

 

 

일본군의 만행을 처음으로 공개적으로 말한 용기있는 김학순 할머니.

 

이 할머니의 증언모습을 보고, 세계의 많은 할머니들이 용기를 얻고 증언을 하기 시작했다.

결국 미국의회에서까지 결의안을 채택하고 세계적으로 일본정부의 만행과 무책임을 폭로하게되었다. 

 

필립핀에서 최초로 일본군의 만행을 증언한 토마사 할머니.

 

네델란드인으로서 인도네시아에서 살다가 일본군에 끌려가서 위안부생활을 했던 잔 할머니도 한국의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에 용기를 내어 증언에 나섰다.

 

말레시아의 로사린드 할머니도 일본군에 끌려가 당시 많은 중국여성들과 함께 한 위안부 생활을 증언했다.

 

그외에도 타이완, 동티모르, 북한, 중국... 등의 많은 할머니들로부터의 증언들이 나왔다.

 

 

중국 상하이 지역에 있었던 위안소.

 

중국 송산지역의 위안부들 사진. 제일 오른쪽의 임신한 여성은 2006년에 돌아가신 박영심 할머니로 확인되었다.

 

위안소 규정 - 일본군은 위안소를 이용하는 규정까지 써 붙여놓고 운영을 했음에도, 오늘에 와서 자기들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있다.

 

 

전쟁이 끝나고 나자 일본은 이들은 내버려서, 집으로 돌아가기조차 어려운 경우가 많았고, 여생을 고생하며 살아야했다.

 

독일도 2차대전시 여성들을 강제로 데려다가 위안소를 운영했다.

 

사과 - 독일 브란트 수상은 폴란드에서 무릎꿇어 사과했다.

 

그러나 일본은 사과 한마디 없다.

 

그래서 미국의회가 2007년7월30일 일본의 만행을 폭로하고 규탄하는 결의안121호를 채택하여 발표했다. 

 

 

 

 

 

일본은 위안부 문제를 정부가 관여하지 않은 양 발뺌하고있지만 그 증거들이 계속 들어나고있다.

일본은 자기들이 저질러 놓은 만행을 사과하지않고 덮어두고 세월이 가면 잊혀지길 바라는 것 같다.

그럴수록 더 철저하게 밝혀내고 기록해서, 일본의 비양심적이고 비인륜적인 정책을 두고 두고 후세에 전해야할 것이다.

 

그 당시 어린 여성들을 보호하지 못한 구한국...

구한국시대에 국력을 키워 외세에 대처하지 못한 당시 정치인들도 책임을 져야할 것이다.

오늘날의 정치인들을 보면서, 과연 이 문제에 관심 갖는 정치인이 한 놈이나 있을까...  국가의 미래는 안중에 없고, 그저 자기 인기관리, 다음번 선거에서의 표 방향이나 관심두는 놈들 - 이게 요즘 정치하는 놈들의 생각이 아닌가... 

다시는 한국의 자녀들, 자손들이 다시 위안소 같은 곳으로 끌려가지 않도록 정신 차려야 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