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 공화국(Suomen tasavalta)
핀란드는 면적 338,455km2로 꽤 넓으나 인구는 2022년 기준으로 555만명이다.
핀란드어는 다른 유럽국가들과는 다르게 우랄어족의 핀어군에 속한다고 해서 조금 친근감이 든다.
13세기부터 핀란드는 스웨덴의 식민지로 병합되어 600여년을 지냈다.
1808-1809년에 치러진 스웨덴-러시아 전쟁에서 스웨덴이 져서 핀란드는 러시아의 지배로 들어가, 핀란드 대공국이라는 이름으로 러시아 제국의 자치령이 되었다.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 핀란드는 독립을 선포했다.
핀란드 왕국이 일시적으로 수립되었지만, 1919년 핀란드 헌법이 도입됨에 따라 핀란드는 공화국이 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핀란드는 소련과 겨울 전쟁 및 계속 전쟁을 치렀고, 이 과정에서 영토의 10분의1 가량을 소련에 할양해야 했다.
핀란드는 냉전 동안 군사적 중립을 유지했다. 1995년 유럽 연합에, 1999년 유로존에 유로화 도입과 동시에 가입했다. 2023년 북대서양 조약 기구(NATO)에 가입했다.
원로원 광장(Senaatintori)은 핀란드 헬싱키 중심부의 광장으로, 주위에 정치, 종교, 과학, 상업 기관들이 늘어서 있다.
1809년 핀란드를 다스리게 된 러시아는, 그당시 핀란드의 수도 투르크(Turk)가 너무 서쪽에 치우쳐서, 1812년 수도를 러시아에 가까운 헬싱키로 이전하기로 결정했다.
그로부터 이 원로원 광장을 중심으로 중요한 건물을 짓게 되었고, 1825년 이 원로원광장을 조성하였다.
주변의 유명한 건물이나 랜드마크로는 헬싱키 대성당, 정부청사, 헬싱키 대학교 본관, 도서관 등이 있다.
헬싱키 대성당
루터파의 총본산으로 1830년에 착공해 1852년에 완공하였다.
처음에는 교회 이름이 성니콜라스(St. Nicholas) 교회 또는 "큰 교회"라고 불렸다고 한다. 카를 루빙 엥겔(Carl Ludvig Engel)이 설계하였고, 건물은 높은 지대에 흰색주랑과 연한 녹색의 돔이 멀리서 보아도 웅장하고 위엄 있게 보인다.
아연으로 만들어진 지붕 위에는 예수의 12제자의 동상이 있다.
정부청사.
옛날에는 국회의사당으로 사용되었으나 지금은 정부청사로 사용하고 있다.
헬싱키대학교 본관.
헬싱키 대학교는 스웨덴 제국 시절인 1640년에 투르쿠 시에서 투르쿠 왕립 아카데미라는 이름으로 설립되었다.
1828년에 투르쿠 대화재 후 투르쿠에서 헬싱키로 옮겼으며, 1917년 핀란드가 주권국가가 되었을 때 헬싱키 대학교로 개명되었다. 2020년 기준 학생수 31600명 교수진 4700명 규모다.
원로원광장 중앙에는 러시아 황제 알렉산드로 2세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알렉산드로 2세 동상
러시아로부터 독립한 핀란드는 러시아의 잔재를 털어내기 위하여 동상을 철거하자는 의견과 아픈 역사이지만 유산으로 남겨 두자는 의견이 대립하였다.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한 결과에 따라 식민지 시대의 아픔을 기억하고 교육적인 측면에서 동상을 보존하고 있다고 한다.
대통령궁.
1843-1845년에 건축되었고 왕궁으로 사용되다가 1919년 대통령궁이 되었다.
지금은 대통령의 집무, 접견, 연회장소로 사용되고 있다. 현재 대통령은 Mantyniemi에 거주한다.
스웨덴 대사관.
1839년 건축된 건물을 1920년 스웨덴이 인도받아 스웨덴 건축가 Torben Grut가 스톡홀름궁전처럼 개축하였다.
우스펜스키 성당(Uspensky Cathedral)
핀란드의 수도 헬싱키(Helsinki)에 있는 동방 정교회 성당. 카파자노카(Katakjanokka) 거리에 있는 성당으로 러시아의 문화적인 영향을 보여주고 있다. 핀란드가 러시아의 지배를 받고 있던 러시아 건축가 알렉세이 고르노스타예프(Aleksei Gornostaev)가 설계했다.
성당은 동방 정교회의 전통에 따라서 1862-1868년에 건축되었다. 성당의 외벽은 빨간 벽돌로 지어졌으며, 양파 모양의 돔 위에는 금빛 십자가가 빛나고 있다.
성당 지붕에 양파모양은 성령의 불꽃을 상징하고 21k금으로 입혀있다. 중앙의 제일 큰 모양은 예수를 주변의 작은 모양은 12사도를 나타낸다고..
헬싱키 항구
헬싱키와 스톡홀름을 왕복하는 크루즈선
독특한 모양의 구조물은 소형 유람선 선착장이다.
대성당 오른쪽에 위치한 국립도서관
시벨리우스 공원(Sibelius Park)
핀란드에서 태어난 세계적인 작곡가 얀 시벨리우스를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공원이다.
시벨리우스는 조국에 대한 사랑을 주제로 한 곡들을 다수 작곡해 핀란드인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곳에는 강철로 만든 파이프 오르간 모양의 기념비와 시벨리우스 두상이 있다. 600여 개의 강철 파이프로 이뤄진 기념비가 특히 인상적이다.
핀란드의 대표적인 여류 조각가 엘라 힐투넨(Eila Hiltunen)이 1967년 시벨리우스 사후 10주년을 기념해 만든 것이다.
시벨리우스 두상
공원 가까이에 있는 카페가 인상적이다.
헬싱키의 거리
헬싱키 미술관 HAM
헬싱키 아트 뮤지엄의 준말 'HAM'으로 불리는 곳으로, 주로 현대 미술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고..
핀란드의 내일을 책임질 어린이들..
헬시키 교통의 일부를 담당하는 노면전차
건설비를 최소화할수 있는 저공해 교통수단이라고 생각한다.
100년도 더 되었다는 아파트.
이 곳에서의 아파트 소유는 재산증식 수단이 못 되고 책임만 늘어난다는 설명을 들었다.
칼 만네르헤임 (1867-1951) 동상
핀란드의 군사지도자, 정치인이다. 만네르헤임은 핀란드 내전 당시 백핀란드 측 사령관, 핀란드 왕국의 섭정(1918년–1919년),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핀란드 방위군 총사령관, 제6대 핀란드 공화국대통령(1944년–1946년)을 역임했다.
핀란드가 소련과 두 차례 걸친 불리한 전쟁(겨울전쟁, 계속전쟁)에서 핀란드 방위군 총사령관으로서 나라를 지켜냈다. 1944년 말, 독일의 패색이 짙어지자 핀란드는 독일을 버리고자 하였고, 이후 차기 대통령으로 선출된 만네르헤임은 소련, 영국과의 평화협상을 주도했다. 전쟁이 끝난 뒤인 1946년 대통령직을 사임했고 1951년 사망했다.
만네르헤임이 사망하고 1953년 이루어진 핀란드의 설문조사에서는 만네르헤임이 전 역사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핀란드인으로 뽑혔다.
핀란드의 건국과 러시아·독일 등 외세 열강으로부터의 독립을 지켜낸 만네르헤임은, 오랫동안 근대 핀란드의 국부라고 칭송받아 왔다.
이동하는 버스에서 찍은 이 사진이 아니었으면 핀란드의 위대한 인물을 모르고 지날뻔 했다. 어느 나라나 그렇듯 핀란드에게는 이순신같은 칼 마네르헤임이 있어 국민들이 자부심을 느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