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원 Summer Palace and Imperial Garden은 베이징 해정구에 있는 황족 정원으로, 서태후의 여름 별장이라고도 한다.
원래 이자리에는 청의원이 있었으나, 영국과 프랑스 연합군이 파괴하여, 1888년에 서태후가 재건했으며 이 때 이름을 이화원으로 바꿨다.
이화원 입구 정문
여기도 관광객이 넘쳐난다.
인수전으로 들어가는 인수문
정원이므로 나무와 돌을 많이 갖다놓았다.
인수전 - 어진자는 장수한다는 뜻. 원래의 이름은 근정전으로 황제가 이화원에 있을때 정무를 보던 곳.
(서울 경복궁에도 왕이 정무를 보던 근정전이 있다.)
인수원 앞에있는 동물상 - 상상의 동물들
서태후는 원래 가난한 집에서 자랐는데, 궁녀로 궐에 들어와 함풍황제의 눈에 들어 두번째 황후 자희황후가 되었다.
첫째황후인 자안황후의 음식에 불임되는 음식을 계속 넣게하여 아이를 못 낳게 하고, 본인은 아들을 낳았다.
함풍황제가 31세에 사망하자 자희황후(서태후)의 아들이 6살의 나이에 동치황제가 되었다.
동치황제가 어리므로 선황제의 두 부인이 태후가 되었다.
자안태후는 자금성 동쪽에 살아서 동태후, 자희태후는 서쪽에 살아서 서태후라고 하였다.
황제가 어려서 서태후가 수렴청정을 하기시작했는데 이때 28세였고, 그후 48년간 사실상 중국을 통치하였다.
동치황제도 일찍 죽고 그 뒤를 3살짜리 광서황제가 이어받아, 서태후는 계속 수렴청정을 했다.
광서황제가 19세가 되자 서태후와 대립하게 되었고, 개혁하려하자 서태후편인 수구세력이 반대했다.
옥란당 안내판 - 한글의 위상 - 중국어와 국제어인 영어 다음에 한글이 있다. 그 다음이 일본어고..
번역이 좀 어색하다. 인접가능 은 접근가능 이라야 하는데.. 그래도 이정도가 어디냐. 한국인들이 많이 다닌 결과이다.
1898년 광서제가 개혁을 하려다가 수구파에 의해 좌절되고 이 옥란당에 갇혀 10년간 지내다가 독살되었다.
그 다음날 서태후도 죽었고, 3살짜리 푸이가 뒤를 이으며 청나라는 종말을 향해 가게된다.
광서제가 갇혀있는동안 도망가지 못하도록 사방에 있는 건물 뒤를 이렇게 벽으로 막았다.
낙수당 은 즐겁게 살며 장수한다는 집으로 서태후가 말년에 생활했던 곳으로 내부공개는 안한다.
서태후의 장수를 기원하는 뜻으로 낙수당 앞에 장수를 상징하는 동물상들이 있다.
낙수당 앞에 있는 큰 바위 - 이걸 옮겨오기위해 문을 뜯었다고..
요월문 - 여기서부터 장랑이 시작된다.
장랑은 '긴 회랑'이란 뜻으로 길이가 728미터이며 평면공간에는 그림을 그려넣었다.
천정 목재에도 그려있고..
위쪽 벽에도 그려있다.
그림 내용은 서유기나 삼국지 같은 소설책 내용들이 많다고한다.
비오는 날이나 햇볕이 강한 날에도 서태후는 호수를 바라보며 이 회랑을 즐겨 걸었을 것이다.
장랑이 꺽이는 부분에는 밖으로 나오는 계단도 만들어 놓고..
장랑 도중에 이렇게 정자를 만들어 산보 도중에 쉬기도 하였다.
장랑은 직선 부분도 있고 곡선부분도 있다.
그림은 외벽에도 그려있다.
이 장랑은 복도건물로는 중국에서 가장 크고 길며 유명하다.
운휘옥우 패루 - 구름 노을 궁전이 서로의 빛을 받아 함께 빛난다는 뜻. 배운문 앞 곤명호수가에 있다.
배운문 - 배운전으로 가는 문으로 궁궐격식에 맞는 현판을 달았다.
이화원 구경 도중에 갑자기 비가 내려 우산을 급히 쓰기도 하였다.
서태후가 사용하던 물품들, 천정에 달린 등은 최초의 전등.
이화원에는 중국 최초의 전화가 설치되었다.
곤명호 - 원래 조그만 호수가 있었는데, 인공으로 확장하여 이렇게 넓은 호수를 만들었다.
곤명호에 자라는 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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