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가 유지되려면 도로 전기 통신 상수도 등 기반시설이 필요하지만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상수도가 아닐까. 사람이 물 없이는 못 사니까.
그래서 큰 도시들은 대개 큰 강을 끼고 발달하게 마련이다.
로스엔젤레스(Los Angeles,LA)시는 현재 인구가 380만명이나 같은 생활권인 주변도시를 포함한 대도시권(LA Metropolitan)인구는 1200만명이다.
LA기후는 연 강수량이 384mm로 건조기후에 속하며, 비는 겨울과 봄(11월- 4월)에 353mm가 내리고, 여름 가을(5월-10월)에는 겨우 31mm가 내린다. (서울 연 강수량은 1400mm)
뜨거운 여름에 비가 거의 안 내리니 자연상태에서는 식물이 자라기 힘들다.
LA를 처음 건설할때는 엘에이강(Los Angeles River)이 상수원이 되었다.
LA강은 그 길이가 77km이고 평균 배출량은 6톤/초 인데, 514km인 한강(평균 배출량 670톤/초)수량의 110분의1밖에 안되어 LA도시 성장에 문제가 되었다.
LA시 관계자는 1900년 인구가 10만2천명이었을때 벌써 물이 모자랄 걱정을 했다.
LA시에서는 1925년 예상 인구를 39만명으로 잡고 상수도 확충계획을 잡았는데, 외부에서 물을 끌어오지 않으면 안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1. LA Aqueduct
당시 Eaton 시장이 주도해서, LA에서 200여마일 북쪽 (시에라 네바다산맥의 동쪽 경사면의 물이 모여지는) 오웬스 강(Owens River)을 LA 물 공급처로 잡았다.
거기에 필요한 땅과 물사용권을 1905년에 45만달러에 매입했다. 구입 토지의 규모는 오웬스밸리30만에이커이고, 98%가 개인 소유였다.
1907년 주민투표를 해서 2300만불의 채권을 발행하여 자금을 확보하고, LA 대수로(LA Aqueduct) 공사 계획을 진행시켰다.
공사감독으로는 아일랜드 출신 물홀랜드(William Mulholland)가 맡았다.
1908년 공사가 시작되었는데, 몇년에 걸친 공사에 좋은 보수($2.25/day)때문에 전국에서 일꾼들이 모여들었다. 그들을 출신국들로 보면 그리스, 불가리아,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스위스, 멕시코 등이다.
대수로 공사를 위해 도로 건설 215마일, 파이프시설 230마일, 송전선 218마일, 전화선 가설 377마일, 시멘트 공장 신규 건설, 근로자 캠프 시설 57곳이 필요했고, 동시 최다 근로자수 3900명이었다.
대수로 공사 내역은 터널 142곳 43마일, 수로 34마일, 콩크리트 수로 39마일, 덮개수로 98마일 등을 건설하는 것이다.
스틸파이프는 미국 동부연안에서 실어오는데, 남미대륙끝 Cape Horn을 돌아왔다.
터널 작업때는 계획보다 1피트를 더 팔때마다 1인당 40센트를 더 주기로하니 능률이 30% 올라갔다.
5마일 길이의 엘리자베스 터널(Elizabeth Tunnel)을 직경8피트로 굴착하는데, 하루 16피트 전진으로 계획했으나, 22피트를 굴착했고, 5년계획을 20개월에 관통했다.
도랑을 파고, 터널을 뚫고, 파이프를 설치하고, 펌프장을 건설하고, 산을 넘어오는 물이 다시 저지대로 내려오는 낙차를 이용해 수력발전소도 2곳 건설했다. …6년에 걸친 공사끝에 391km의 대수로가 완성되었다. (서울–부산 직선거리는 320km)
1913년11월5일 개통식에는 3만명이 참석했는데, 물홀랜드는 관객에게 “여러분과 여러분의 자녀들, 그리고 자녀들의 자녀들에게 계속 물을 공급하는 대수로가 완성되었다”고 말했다.
새로 공급되는 물의 양은 그당시 공급량의4배의 용량이었다.
물공급이 충분히 이루어지자 도시는 빠르게 성장해갔다.
물홀랜드를 처음에 대수로가 완성되는 1913년 인구를 26만명으로 예측했으나, 실제는 48만5천명이 되었다.
그래서 그로부터 10년이 안되어 또다른 물 공급처를 찾아 나서야했다.
2. 콜로라도강 수로(Colorado River Aqueduct)
1920년 LA인구는 57만명으로 증가하여, 물홀랜드는 1923년 콜로라도강 수로(Colorado River Aqueduct) 실사에 나섰다. 물홀랜드는 이름에 '물'자가 들어갔으니 물 전문가로 태어난것 같다.
1928년 MWD(Metropolitan Water District)법이 통과되어, MWD주체로 공사 계획이 진행되었다.
MWD는 LA시와 인근의 다른 도시에도 물을 공급하는 업무를 시행하는 기구이다.
1931년 2억2천만불의 공사자금을 주민투표로 승인받고 1933년1월 공사 착수했다.
미국정부에서는 1934년 Parker Dam 공사에 착수했는데, 이 댐은 수로를 위한 댐인 셈이다.
콜로라도 강 후버댐에서 하류로 155마일지점의 파커댐(parker Dam)으로 생긴 Havasu호수에서 LA까지 242마일에 걸친 공사는, 미국 대공황시기에 남가주 최대의 공공 프로젝트였다. 8년동안 동원된 인원 3만명인데, 최고 동시작업 인원은 1만명에 달했다.
두개의 저수지, 펌프장 5개소, 터널 148km, 파이프 매설 135km 등의 공사가 진행되었는데, 최대 난공사는 길이 21km, 지름4.9m의 San Jacinto터널공사였다.
연간 120만 acre-feet(15억톤)의 물을 통과시킬수 있는 용량의 이 대수로공사는 1941년에 완성했다. Acre-feet란 1에이커면적에 1피트높이로 채울수 있는 물의 양.
1999년 완공된 최대의 저수지인 Diamond Valley저수지는, 지진과 가뭄에 대비하여 6개월분의 물을 저장하고있다. 재난에 철저히 대비하는 모습을 볼수있다.
3.
1940년 LA인구는 150만으로 증가하였고, LA시는 LA Aqueduct를 북쪽으로 105마일 더 연장해서 더 많은 수량을 확보하여 끌어오는 계획을 세웠다.
1940년에 착수하여, 2차대전에 참전할 무렵에 완공하였다.
전쟁이 끝나고 LA에 경제붐이 일어 1950년에는 인구가 2백만명이 되어 인구순으로 미국 4번째 도시가 되었다.
4. 제2 LA Aqueduct
1960년 LA인구 247만명, 더 많은 수자원 확보를 위해, 8천9백만불을 들여 제2 LA Aqueduct를 1965년 착수했다.
이번 공사는 Haiwee저수지에서 LA까지의 공사로, 규모가 좀 작고, 건설장비가 발달되고, 스틸파이프의 가격이 저렴해서 공사가 쉬웠다. 1970년 제2수로 완공으로 수량이 50% 증가했다. 이들 두 LA Aqueduct 가 LA에 공급하는 물은 하루에 4억3천만 갤론이다.
5.
1970대에는 캘리포니아 주정부에서 추진하는 California Aqueduct가 추진되었다.
이 사업은 남가주에 생활용수를 공급하는 목적외에 캘리포니아 중앙평원에 농업용수를 공급하는 목적도 있다. Sacramento 강 하구 삼각주에서 587미터의 산을 넘어오는 공사로, 수로길이는 444마일이다.
건조기후에 속하는 LA는 큰 강이 없어서, 인구가 증가하는데 비례해서 원거리에서 물을 끌어오는 대규모 수로건설 공사를 계속 시행함으로서 LA가 미국 제2의 대도시로 성장할수 있게했다.
이처럼 오웬스강, 콜로라도강, 새크라멘토강에서 각각 생활용수와 공업용수를 끌어오지 않았다면 LA대도시권이 이처럼 크게 성장하지 못했을것이다.
토목기술이 아직 덜 발달한 20세기초에 이렇게 대규모 수로를 건설하겠다는 미국인들의 개척정신이 미국성장의 밑바탕이 된것같다는 생각이 든다.
LA대수로를 거쳐온 물이 도착되는 곳 - LA Aqueduct Cascades
대형 수로관을 따라가면 차들이 달리는 5번 고속도로 건너편 왼쪽 1km쯤에 LA저수지가 있다.
위 두 사진은 일반적인 LA지역 야외 모습이고, 아래사진은 물을 주면서 나무를 가꾼 모습이다.
Silver Lake - 인공으로 만들었고, 대형 수로관으로 물을 끌어다가 채운 저수지이다.
저수용량이 8억갤론이며, 한번 채우는데 20일 소요되고, 이 부근 60만가구에 수도물 공급하고있다.
LA인근에는 이런 저수지가 여러군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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